검열관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영화 시사실에 앉아 있다. 시간이 흐른 뒤 방안에서 옷을 벗고 여자들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나온다. 장면이 바뀌면 전쟁이 터진 도시가 출현하고 사람들은 총을 난사하며 탱크가 몰려온다. 이 소란 속에서 술꾼인 바노는 갑자기 10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스페인의 왕이 되어있다.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를 자유로이 오가며 반복되는 정치와 권력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풍자한 이 작품은 이오셀리아니의 작품 중 가장 거대한 스케일로도 유명하다. 암울한 현실 세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는 이오셀리아니 특유의 스타일도 여전하다. 영화가 시작하면 검열관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시사실에 심드렁하게 앉아 있다. 그리고 본영화 <불한당들>의 타이틀이 떠오르면 사치스럽게 차린 방안에 옷을 벗어 던진 채 여자를 끼고 방탕하게 모여앉아 술 마시는 사람들이 보인다. 옆방에서 혼자 전자오락을 하다 시끄러워 견디지 못한 어린 남자아이가 갑자기 총을 들고 이들을 난사한다. 이들은 무기 거래상이었다. 장면이 바뀌고 전쟁이 터진 어느 나라가 보인다. 지붕 위에 선 사람들은 총을 마구 쏘고 탱크가 도시를 활보한다. 부랑배들은 폭탄이 떨어져도 태연하게 걸어가고, 폭발하는 탱크 옆에서 유유히 술을 마신다. 이 소란 속에서 술꾼 바노(아미란 아미라나시빌)는 바위틈을 빠져나오더니 갑자기 약 10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중세시대 스페인의 어느 공국 왕으로 변한다. 에카(니노 오조니키데)는 숨겨놓은 정조대 열쇠로 정조대를 벗어버린다. 돌아온 바노는 그를 시기하는 측근에게 배반당해 왕위를 버려야 할 위기에 처한다. 한편, 왕비의 간통장면을 목격한 그는 왕비를 처형하고, 노예로 끌려와 바노의 사랑을 받던 리아(켈리 카파나데)가 바노를 독살한다. 다시 시대는 10세기 후, 벽 바깥으로 나온 바노는 소매치기 좀도둑이다. 혁명주의자인 에카는 도둑인 바노의 재주를 눈여겨보고 그를 혁명군으로 끌어들인다. 줄거리를 봐도 알 수 있듯, 그리고 이오셀리아니의 다른 영화들도 그러하듯 <불한당들> 역시 뚜렷한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전쟁터의 거지 술꾼 3명은 역사의 벽을 넘나들면서 반복되는 역사를 풍자한다. 중세의 야만적인 제후와 공산주의자들과 무기 상인과 마피아가 모두 같은 사람들인 인생 유전, 그리고 재회와 반복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가장 먼저 파악되는 것은 구소련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이다. 권력에 오른 도둑 바노는 스탈린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소련의 마피아가 KGB 경찰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현재 러시아의 모습을 조롱하고 있다. 여러 세기를 통해 반복되는 권력자의 실체가 불한당임을 보여주는 것은 영화를 구성하는 몇 개의 기발하게 코믹한 삽화들 중 하나다. 정치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되 이처럼 아름다운 우화로 만드는 재능은 오직 이오셀리아니만의 것이다. 이오셀리아니는 <불한당들>로 <달의 애인들>(1984), <그리고 빛이 있었다>(1989)에 이어 세 번째로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솜씨,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를 자유로이 오가는 상상력은 영화사를 통틀어 전대미문의 재능이다. 무엇보다 현실은 척박하지만 그를 따뜻한 성찰로 이끌어내는 대가의 호흡 역시 발군이다. <불한당들>은 그러한 이오셀리아니 영화의 스타일이 가장 큰 규모로 나타난 작품이다. 규모에 눌리지 않고 여전히 그 시적인 경이로움을 과시하는 것, 정말 입을 다물 수 없는 경지의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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